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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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서는 서남아시아의 국가에 관한 것입니다. 중화민국의 행정 구역에 대해서는 이란 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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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어: 독립, 자유, 이슬람 공화국 | |||||
| 국가: 이란 이슬람 공화국 국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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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 | 테헤란 35°40′N, 44°26′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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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용어 | 페르시아어 | ||||
| 정부 형태 | 공화정 모하메드 알리 하메네이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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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수립 • 선언 |
팔라비 왕조로부터 1979년 4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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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
1,648,195 km² (18위) 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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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 2007년 어림 • 인구 밀도 |
70,472,846명 (17위) 42명/km² (163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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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DP (PPP) • 전체 • 일인당 |
2007년 어림값 $7,529억 (18위) $10,624 (71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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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DI • 2007년 조사 |
0.759 (94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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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화 | 리알 (ISO 4217:IR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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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대 • 여름 시간 |
IRST (UTC+3:30) IRDT (UTC+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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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O 3166-1 | 364 | ||||
|---|---|---|---|---|---|
| ISO 3166-1 alpha-2 | IR | ||||
| ISO 3166-1 alpha-3 | IRN | ||||
| 인터넷 도메인 | .ir | ||||
| 국제 전화 | +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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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페르시아어: ایران)은 서남아시아 지방에 위치한 이슬람 공화국이다. 공식 명칭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페르시아어: جمهوری اسلامی ایران 좀후리-예 에슬라미-예 이란)이다. 옛날부터 이란은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군주제는 시작된 지 약 1400년 만에 폐지되었으며 현재는 공화제 국가이다.
목차 |
[편집] 기후
이란은 열사의 사막이 아니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거대한 사막 국가와 달리 기본적으로 사막이 아닌 고원으로 이뤄져 있다. 북쪽의 고원지대는 상당히 추워서 1년의 절반 동안 눈에 덮여 있는 곳들도 있다.
[편집] 역사
- 이 부분의 본문은 이란의 역사입니다.
이란인의 직접적인 조상은 인도-유럽어족의 한 갈래인 아리아인이다. 이들이 고원에 들어온 것은 기원전 2500년 쯤으로 추정된다. 중앙아시아 초원에 살던 아리아인들은 기원전 4000년~3000년 무렵에 이동해서 일부는 유럽에 들어가 게르만, 슬라브, 라틴의 원조가 되었고 일부는 남쪽의 고원에 정착해 이란인이 되었다. 더 밑으로, 더 남쪽으로 내려간 사람들은 인도에 진출해 원주민이던 드라비다인들을 제치고 현재의 인도인들의 조상이 됐다.
[편집] 아리얀족의 이주와 메디아 제국
지금의 이란 땅에 처음으로 페르시아인들이 등장한 시기는 기원전 9세기경이다. 흑해 북부지방인 러시아 남부지역으로부터 아리얀족들이 부족별로 지금의 이란지역으로 남하해왔다. 그 중 대표적인 민족이 파르사족과 메대족이었다. 메대족이 먼저 강대국으로서 국가를 형성하였고 파르사족은 메대족의 지배를 당하는 민족이 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6세기초에 메디아족을 이어 파르사족이 중동의 패권을 잡게 되었다. 모계는 메대의 왕손이었고 파르사족의 피를 이어 받은 키루스 2세가 기원전 533년에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하였다.
이때 조로아스터교가 이란인들의 종교로 유입되었다. 키루스는 구약 성경에 고레스라는 명칭으로 등장하며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 묘사되고 있을 정도로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은 인물로 매우 유명하다.
아케메니드조는 절대군주체제로서 다리우스 1세는 자신을 ‘왕중왕’이라 부르며 높은 보좌에 군림하였다. 사방의 모든 민족들이 매년 아케메니드조 페르시아 제국에 조공을 바칠 정도로 페르시아 제국은 강성해졌다.
그러나 이 제국도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치러야 했고 기원전 330년에 결국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정복당하고 말았다.
[편집] 알렉산더의 침공
알렉산더 제국의 지배하에서 그리스 문물이 이란 지역에 까지 흘러 들어왔고 후세에 헬레니즘 문화라고 불리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리스인들의 지배후에 이란은 뒤 늦게 남하해온 한 유목민의 지배를 받았으며 그들의 제국은 파르티아라고 불렸다.
[편집] 파르티아 제국
기원전 250년 경에 세워진 파르티아 제국은 전통적인 페르시아 제국의 절대 왕정과는 다른 정치체제로 세워졌었다. 유목생활을 하던 지배층 민족은 거대한 제국을 통솔할 만한 정치지도력이 없어서 기존의 지방세력들을 그대로 정치세력으로 이용하였다.
따라서 파르티아 제국은 수많은 소공국들로 구성된 연방국가의 형태를 띄게 되었다. 파르티아 제국 안에는 페르시아족을 비롯하여 쿠르드족, 아프간족들이 나름대로 소공국을 형성하여 포함되어 있었다. 파르티아 제국은 서쪽의 로마제국과 대치하였으며 강력한 로마제국과의 많은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은 강대국으로 오랫동안 지금의 중동지역에서 세력균형을 이루었다.
[편집] 사산조 페르시아
파르티아 제국의 뒤를 이어 이란 땅에는 또 다시 절대군주체제의 전통적인 이란 국가인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이 226년에 건국되었다.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은 국교로 조로아스터교를 선포하였고 강력한 군주체제를 부활시켰다.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 때까지 이란인들의 생활모습은 오늘날 이란인들의 생활모습과는 다른 면이 많다.
그들은 1년중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인 3월 21일을 가장 중요한 명절로 지켰으며 조로아스터교의 상징과도 같은 불을 숭상했다.
[편집] 이슬람화
사산조는 7세기경 아라비아 반도에서 출현한 아랍 이슬람 국가의 침공을 받아 서서히 조로아스터교대신 이슬람교를 그들의 종교로 따르게 되었다.
이란인들은 공식적으로 1258년까지 아랍인의 지배를 받았으며(물론 10세기에 페르시아 국가를 지향하는 사만조라는 페르시아 왕국이 세워졌었지만) 1256년부터는 몽골의 침입을 받아 몽골인이 지배하는 일 한국에 편입되었으며 또 다시 16세기 초까지 투르크계 출신인 티무르가 세운 티무르 왕조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다.
[편집] 이란근세: 사파비 왕조
1501년 이란에서는 다시 모든 외세를 물리치고 이스마일 1세에 의해 사파비 왕조가 건국되어 1749년까지 국가가 지속되었다.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내세우면서 시작된 사파비조는 압바스 1세의 통치기(1588-1629)에 정치적, 문화적으로 최대 절정기를 누렸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 제정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의 침략(1724년), 아프간 왕국의 침공(1739년) 등을 당하는 등 쇠퇴의 길을 걷다가 1794년 멸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카자르 왕조가 대를 잇게 된다.
[편집] 이란근대: 카자르 왕조
사파비조 이후에 1794년에 카자르 왕조가 세워져 1925년까지 이어짐으로써 근대 이란의 모체가 되었다. 19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이란은 러시아 제국과 영국 사이의 전쟁터였다. 외세의 개입에 반대하는 신진 지식인들이 단체를 결성하여 외세에 대항하였으며 이들 세력에 의해 이란의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1906년 입헌 혁명이 성공함으로써 입헌 군주제가 이란의 세로운 정치제도가 되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인 이란은 1907년 러시아와 영국의 보호지대로 분할되었으며 1914-18년 사이에 발생한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중립을 선포하였으나 이란의 석유로 인해 양 세력들의 목표물이 되어 전쟁터로 변했다.
1919년 이란은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으로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편집] 이란현대: 팔라비 왕조
1921년 리자 칸이 쿠데타를 성공시켜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였으며 1925년, 카자르 왕조를 팔라비 왕조로 바꿈에 따라 샤로 등극되어 팔라비 1세가 되었다.
리자 샤는 터키의 서구화를 모방하여 서구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이미 이란의 서구화는 카자르 왕조 때에도 있었다). 1935년에 와서는 국호를 페르시아에서 지금의 이란으로 변경하였으며 1936년부터 궁정의 여성들부터 베일을 벗기 시작하여 서서히 이란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1년에 나치 독일이 이란을 침공하였으며 연합국에 의해 수복되었다. 역시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루마니아 등 전 추축국에 선전 포고하였다.
같은 해에 리자 샤가 죽고 의 황태자인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팔레비 2세)가 샤에 올랐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국제 연합의 창설 회원국이 되었으며 1951년 석유 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하였다. 한편, 1962년에는 백색 혁명이 일어나 종교 재단의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분배하는 등 강력한 개혁정책이 실시되었다.
이 개혁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서구문물의 유입으로 이슬람 사회의 변질을 우려하던 여러 종교 지도자들의 반정부 운동을 부추기게 하였다(특히 호메이니의 경우이다). 팔라비 왕조는 1979년에 혁명으로 폐지되어 지금의 공화정으로 바뀌고 말았다.
[편집] 호메이니의 반정부 운동
1963년 6월 호메이니(Khomeini)의 주도로 반백색혁명이 발생하여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호메이니는 이라크의 바그다드로 망명하였으나 그의 정신적 지도력은 이란내 학생들과 농민들 사이에서 계속적으로 이어졌으며 1970년대에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샤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높아져 갔다. 샤는 국가를 통제하기 위해 이러한 불만세력들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였고 이러한 강경대응은 더욱 반정부 운동을 강화시켰다.
[편집] 이란의 이슬람 혁명
1977년 11월 테헤란에서 시위가 일어났으며 1978년 2월 타브리즈(Tabriz)에서 폭동이 발생하는 등 심화된 반 팔레비 운동은 1979년의 이슬람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979년 3월 30-31일 국민투표에서 98%가 이슬람공화국 수립을 지지하였으며 파리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호메이니가 4월 1일 이슬람공화국 수립을 선포하였다. 이슬람 공화국 수립이후 이란은 국내외적으로 아주 복잡한 정치환경 가운데 처하게 되었다.
1980년 1월 25일 대통령 선거에서 제1대 대통령으로 바니샤르가 당선되었으며 4월 7일 공식적을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끊었으며(1979년까지는 친미 국가) 그 해 9월 22일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생하였다. 바니샤르 대통령은 1년 남짓 지난 후인 1981년 6월 호메이니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해임되고 7월 24일 알리리자이 대통령 취임하였으나 8월 30일 폭발사건으로 대통령이 사망함으로 대통령이 바뀌게 되었다.
10월 2일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현재 호메이니를 이어서 국가원수인 최고 종교지도자 직위에 있는 케메네이가 당선되었다. 하메네이는 1985년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되었으며 호메이니와 협력관계를 잘 유지하였고 결국 1989년 6월 3일 호메이니가 사망한 다음 날 이란 최고 종교 지도자로 피선되었다.
호메이니 사후 이란 정치는 하메네이와 대통령 라프산자니의 2인 구도로 확정되었다. 라프산자니는 1989년 7월 28일 제5대 대통령 선거와 1993년 6월 12일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연이어 당선되었다.
[편집] 인구
[편집] 인구 구성
이란의 인구는 전체 67,540,002명(1997년 7월 통계)이며 다민족으로 이뤄져 있다. 페르시아족이 51%, 아제르바이잔족이 24%, 길란-머잔다런족이 8%, 쿠르드족이 7%, 아랍족이 3%, 루르족이 2%, 발루치족이 2%, 투르크멘족이 2%, 기타 1%(유럽계, 러시아인, 인도인, 유대인, 집시, 한국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집] 이란인
- 이 부분의 본문은 이란의 민족입니다.
'고귀하다’라는 뜻을 가진 이란 사람들은 대체로 온순하며 여러 사람이 함께 토론하고 대화하는 것을 선호한다. 또한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에서 널리 사용되는 말인 "인샬라"(모든 것은 신에게 달려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며 이러한 정신이 삶 속에 깊이 새겨져 있어서 매사에 느긋하며 의사결정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어서 상대방이 자신에게 직설적으로 잘못을 지적하는 경우 이를 잘 참지 못하는 면이 있다. 또한 과거 페르시아 상인이라는 말이 있듯 상술에 정통하다.
한편, 이란은 지역마다 서로 다른 인종, 언어, 문화적인 독립성을 가지고 있어서 지방색이 강하다. 이란에서는 다음의 이야기가 있다.
- 이스파한 출신은 열성적이고 지혜로워서 명석한 사업가가 많다.
- 야즈드 사람은 부지런한 농부가 많다.
- 타브리즈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아제르바이잔인들은 강건하여 군인과 상인이 많다.
- 서부 자그로스 산지에 분포하는 쿠르드족은 종교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독립성이 강하여 과격한 전사가 많다.
- 쉬라즈 출신은 그 천성이 정열적이어서 시인이 많다.
[편집] 페르시아족
이란의 인구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페르시아족은 기원전 12세기로부터 기원전 9세기까지 지금의 이란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던 아리얀족의 대표적인 무리였으며 이들이 이란 중남부 지역의 파르스 지방에 정착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명으로부터 페르시아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페르시아족은 쿠르드족과 같이 인도유럽어족의 일원이며 본래 백색 피부에 곱슬머리카락을 가진 자들로서 유럽인들과 같은 체질을 가지고 있었던 민족이다. 페르시아족이 이란 역사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흔히 ‘이란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바로 페르시아인을 뜻한다.
[편집] 아제리족
이란에서 두 번째로 많은 민족인 아제리족은 터키 민족과 같은 민족 튀르크족의 일파이다. 아제리족이 사용하는 아제리어는 아제르바이잔의 아제리족이 사용하는 언어와 같으며 원주민들은 터키 사람들과 통역없이도 어느 정도 의사전달이 가능한 정도이다. 튀르크계 민족인 아제리족이 이란에 거주하게 된 것은 이란이 오랜동안 튀르계 민족의 지배를 받은 것을 반영해 준다.
[편집] 길란족과 쿠르드족
그리고 이란의 북서부 카스피해 연안의 길란주와 머잔다런주에 거주하고 있는 길란-머잔다런인들이 세 번째로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으며, 네 번째는 인구 3,000만 이상의 거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국가를 가지지 못한 쿠르드족이 서부의 산악지대에 거주하고 있다. 이란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은 5~600만 명 정도에 달한다.
[편집] 투르크멘족 및 기타 소수 민족
이러한 주요 민족집단 외에도 투르크메니스탄과 접경한 후라산 지역에는 투르크멘족이 살고 있으며 이란의 남부 지역에는 수많은 소수 민족이 아직도 유목생활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밖에도 북서부 지역에는 약간의 그루지야인, 러시아인도 거주한다.
[편집] 문화
이란은 인접한 이라크와 아라비아반도 등 서남아시아 이슬람지역 다른 나라들과 달리 아랍 문화권에 속하지 않으며, 민족도 아랍과 다른 이란 민족이다. 언어 또한 파르시(페르시아어)를 쓰고 있다. 다만 이슬람이 지배종교가 되고 칼리프제에 복속된 이후 아랍어와 파르시의 교류가 많아졌다. 파르시는 기원전 7세기~ 기원전 4세기 무렵에 쇄기문자를 빌려서 기록하였으나, 7세기 말에 이슬람 문화가 이란에 전파되면서, 아랍 문자와 비슷한 알파벳을 쓰는 표기로 바뀌었다.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들이 흔히 쓰는 히자브(머리쓰개) 중에서 특히 이란 지역의 여성들이 많이 사용하는 온몸을 덮는 두건을 차도르라고 부른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거리를 걷는 페르시아 여성들을 보면은 차도르를 입고다니는 여성들이 있지만, 반면에 차도르를 입지 않고 양의를 입는 여성들도 많이 있다.
[편집] 종교
이란의 국민은 대부분이 시아파 이슬람교를 믿는다. 다른종교로는 그리스도교(네스토리우스파 교회, 이란 성공회,장로교,오순절교회, 로마 가톨릭, 아르메니아 정교회 등), 조로아스터교가 있다. 하지만 종교의 자유가 없어서, 이슬람출신 교우(MBB)들이 대부분인 이란 성공회의 경우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들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편집] 언론
이란은 민영 방송이 헌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서, 국영 방송인 이란 이슬람 공화국 방송이 방송을 독점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06년 무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퇴임하기까지 개혁파 집권 기간에는 국영통신 IRNA, 이란학생통신(ISNA), 파르시타임스 같은 언론들이 파르시와 영어로 활발하게 안팎의 소식을 전했으며 오히려 국영, 관영 언론들이 개혁과 민주주의의 대변자가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슬람권에선 역설적으로 언론이 자유로운 나라에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수파의 반격으로 법원이 제동을 걸어 2002년, 2003년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으며 2006년 보수파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집권 이후로는 통제가 강화됐다.
[편집] 외교
이란의 외교 정책은 두가지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이란에 대한 외부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과 비동맹국들과의 외교적 접촉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란은 국제 연합의 거의 모든 회원국들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나, 이스라엘, 미국(이란 혁명 이후로)과는 외교 관계가 없다.[1] 대한민국과는 1962년 10월 23일 수교하였다.
[편집] 바깥고리
|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 미디어 자료 분류가 있습니다. |
- 주이란 대한민국 대사관
- (페르시아어/영어) 이란 대통령 공식 홈페이지
- 이란 정보 네트워크
- 이란 투르크멘족의 정체성 쇠퇴
- 이란의 투르크멘 사흐라 여행기
- 이란 뉴스 전문 : 이란 투데이 (Iran Today)
- 중동의 한국인 이란,바레인 편
[편집] 주석
- ↑ Key Events in Iran Since 1921 retrieved 23 January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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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테헤란 2.콤 3.마르카지 4. 카즈빈 5.길란 6.아르다빌 7.잔잔 8.아자르바이잔에샤르키 9. 아자르바이잔에가르비 10.코르데스탄 11.하마단 12. 케르만샤 13.일람 14.로레스탄 15.후제스탄 16.차하르마할에바흐티아리 17.코길루예부예르아마드 18.부셰르 19.파르스 20.호르모즈간 21.시스탄에발루체스탄 22.케르만 23.야즈드 24.이스파한 25.셈난 26.마잔다란 27.골레스탄 28.호라산에쇼말리 29.호라산에라자비 30.호라산에조누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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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국 | 그루지야¹ · 네팔 · 대한민국 · 동티모르 · 라오스 · 러시아¹ · 레바논 · 말레이시아 · 몰디브 · 몽골 · 미얀마 · 바레인 · 방글라데시 · 베트남 · 부탄 ·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⁴ · 브루나이 · 사우디아라비아 · 스리랑카 · 시리아 · 싱가포르 · 아랍에미리트 · 아르메니아¹ · 아제르바이잔¹ · 아프가니스탄 · 예멘 · 오만 · 요르단 · 우즈베키스탄 · 이라크 · 이란 · 이스라엘 · 인도 · 인도네시아 · 일본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중화민국 (타이완)⁴ · 중화인민공화국 · 카자흐스탄¹ · 카타르 · 캄보디아 · 쿠웨이트 · 키르기스스탄 · 키프로스² · 타이 · 타지키스탄 · 터키² · 투르크메니스탄 · 파키스탄 ·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³ · 필리핀 | |
| 속령 | 마카오5 · 홍콩5 · 티베트6 | |
| ¹.일부 영토가 유럽에도 속함. ².지리적으로는 아시아에 속하지만 역사적, 문화적 이유로 종종 유럽으로 분류. ³.국제 조약 또는 합의에 의해 인정되고 있는 지역. ⁴.불인정 또는 일부 인정 국가. 5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역 6. 나라 목록 245개 국가에 포함되지 않는 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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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회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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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옵서버 가입국가: 러시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 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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